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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서 클라우드 시대로"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15년 30일(현지시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의 상황을 조명한 분석기사를 통해 "1998년 다윗에 불과했던 애플이 어떻게 20년만에 MS를 뛰어 넘었을까"라는 기사를 작성했다.

NYT에 따르면 MS의 황금시대를 진두지휘한 빌 게이츠는 한 때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을 남기며 애플의 성장을 평가절하한 바 있다. 그러나 모바일 시대를 정확하게 예측한 애플이 스마트 혁명을 일으켜 MS의 시대를 끝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애플은 모두가 데스크탑에만 집중할 당시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혁명에 관심을 두고 이를 개발하고 육성하기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시장을 간파하고, 이를 선도하기 위해 빠르게 외연을 넓혔다는 뜻이다.

애플의 과감한 사업모델 변화도 성공요인으로 꼽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폰의 등장이다. 애플은 아이팟이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둘 당시, 이에 머물지 않고 아이폰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이팟의 시장을 아이폰이 빼앗을 여지가 충분했으나 이를 두려워 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 모델에 뛰어든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개발할 당시 아이폰이 아이팟의 시장 점유율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걱정했으나, 이는 말 그대로 걱정이었을 뿐이다. 이후 등장한 아이폰은 아이팟을 종말의 길로 이끌었으나 현재 아이폰은 스마트 혁명의 촉매제라는 찬사를 받으며 글로벌 무대를 호령하고 있다. NYT는 "1990년대 PC 시장을 이끌었던 MS와, PC를 주머니에 넣어버린 애플의 비전이 현재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MS가 애플을 눌렀다. 출처=뉴시스

IBM과 MS, 애플의 길
NYT의 분석기사가 나간 후 3년이 흐름 지금, 글로벌 ICT 업계는 또 한 번 새로운 변곡점을 돌아가고 있다. MS가 지난달 30일 애플을 누르고 무려 16년 만에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주가가 반등하며 애플의 지위를 위협하던 MS는 기어이 8년 만에 애플에게 빼앗긴 왕좌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두 회사의 역사를 논하기 전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바로 IBM이다.

IBM은 1911년 설립된 CTR (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mpany)이 전신이다. 특수종이에 구멍을 뚫는 천공카드 시스템을 고안한 호먼 홀러리스가 다른 두 개의 회사와 합병하며 회사의 기초가 다져졌고, 이후 토마스 왓슨에 의해 1924년 IBM으로 거듭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사무기기 업체인 NCR의 영업사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으로 NCR의 영웅이 되었으며, 이러한 에너지는 CTR을 거쳐 IBM까지 고스란히 흘러들었다. 이후 토머스 왓슨의 지도 아래 IBM은 마크1을 기점으로 컴퓨터와 인연을 맺었으며, 1952년 대량생산이 가능한 IBM 701의 성공으로 일약 업계의 스타가 된다.

위기는 1970년대 반독점 소송과 함께 찾아왔다.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이어진 긴 싸움 끝에 결국 무죄로 결론이 났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IBM의 방만한 경영을 유발하는 마약이 되고 말았다. 이후 IBM의 자만심은 하늘을 찔렀고, 조직의 기밀을 지키기 위한 지나친 폐쇄주의 정책이 남발되기 시작했다. 구조적인 문제로 조금씩 적자가 쌓이는 한편, 기술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게으른 공룡’이 되어갔다.

결정적인 패인은 소프트웨어였다. 원래 IBM은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독점적으로 사용했지만 유닉스를 비롯한 다양한 개방형 소프트웨어가 등극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모두 위험에 직면했으나 IBM은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그 순간 앞으로 달려나온 것이 빌 게이츠가 이끌던 MS다. MS는 윈도 운영체제를 중심으로 '끼워팔기'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몸집을 불렸으며, 결국 글로벌 PC 시장을 장악했다.

MS의 패권도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IBM이 주춤거리는 사이 '개인용 PC' 시장에서 애플이라는 위협적인 혁신의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조앤 심슨은 가족들이 잡스의 아버지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자 그를 양자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어린 잡스는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잡스가 유년을 보낸 북 캘리포니아는 베트남전을 계기로 불꽃처럼 일어난 반전 평화주의와 히피문화, 신비주의가 판을 친 격동의 땅이었다. 이 곳에서 잡스는 철저한 자유주의자가 되어 고등학교 졸업 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칼리지(Reed College)에 입학하지만 이내 자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게임회사 아타리에 입사했다.

▲ 애플의 초기 개인용 PC. 출처=갈무리

아타리에 입사한 잡스는 개인용 PC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당시 글로벌 전자업계의 거성 IBM마저 개인용 PC에 회의적이던 시절이었으나 잡스는 미래를 간파했다. 친분이 있던 개발자이자 휼렛패커드(HP)의 직원이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의기투합한 그는 직접 개인용 PC를 제작해 판매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애플의 시작이었다.

애플I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는 10개월동안 200대나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뒤이어 출시한 애플II도 크게 성공하면서 잡스는 돈방석에 올랐다. 그러나 IBM이 유통망과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애플이 가능성을 증명한 개인용 PC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잡스는 리사 프로젝트를 가동해 GUI를 탑재한 애플 리사를 출시했지만 철저하게 실패했다.

MS도 등장했다. 윈도 운영체제를 무기로 PC를 끼워팔기 시작한 MS는 IBM이 가지지 못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며 순식간에 개인용 PC 시장을 장악했다. 동시에 윈도95가 등장한 무렵 잡스가 없는 애플은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으로 전락했다.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떠났고,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애플은 긴 어둠의 터널을 걸어가게 된다.

▲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갈무리

애플의 화려한 비상, 그리고 반복된 역사
넷스트를 이끌며 와신상담하던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후 처음 한 일은 비대해진 맥킨토시 라인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맥킨토시, '아이맥 G3'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무기는 따로 있었다. 2001년 그는 아이튠즈와 기기를 연결한 희대의 역작 아이팟을 출시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극적인 만남이다.

아이팟이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잡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형태의 휴대전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키아를 중심으로 휴대전화의 트렌드가 스마트폰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조만간 아이팟이 제공하는 음원 서비스마저 스마트폰이 삼켜버릴 것이라고 봤다.

2005년 모토로라와 협력해 만든 '락커'는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고민과 초조함이 잘 드러난 제품이었다. 투박한 디자인에 아이튠즈와 연동이 어려운 락커는 출시 후 시장의 냉대를 받았다. 그는 이후 통신사 AT&T와 회동하면서 아이팟 이상의 사용자 경험을 타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두 무위로 끝났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개발에 착수하는 것이었다.

애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에서 최초의 아이폰을 공개했다. 키노트연설을 한 스티브 잡스는 블랙베리의 스마트폰과 아이폰을 비교하면서 "폰에 달린 조잡한 키보드를 언제까지 사용할 것인가"라는 파격적인 멘트로 눈길을 끌었다. 아이폰의 탄생. 세계는 그 순간을 "Apple reinvents the phone(애플이 전화기를 재발명하다)"이라고 불렀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에 이어 팀 쿡 체제로 접어들며 아이폰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콘텐츠 플랫폼을 키우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모바일 시대를 구글 안드로이드와 양분하며 글로벌 ICT를 지배했다. 그리고 애플은 지난 8월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미국을 넘어 글로벌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MS의 역사는 부침이 심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융합의 시대. MS는 윈도에 천착해 모바일 시대의 비전을 놓쳤으며 스티브 발머 CEO 시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걸었다. 스티브 발머 시대의 MS는 모바일 시대가 열리며 애플과 구글이 강세를 보이자 부랴부랴 윈도우 운영체제 강화에 나서며 맞불을 놨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스티브 발머 CEO는 2014년 불명예스럽게 퇴임했다.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등장했다. 그는 MS의 비전을 윈도우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에서 찾았고, ‘인공지능 퍼스트’ 전략을 착실하게 수립했다. 노림수는 적중했다. 윈도우를 포용정책으로 풀어내 구글과 애플까지 품어내는 생태계 전략으로 활용하는 한편 적절한 디바이스 출시로 시장의 바람을 일으켰다. 중심에는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이 플랫폼 구심력 작동을 하며 MS의 변신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 사티아 나델라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PC에서 모바일로의 시대를 맞아 애플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불과 몇 달만에 MS가 애플을 누르고 1위 기업의 자리에 오른 비결은 포스트 모바일에 있다는 평가다. 아마존의 AWS가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구글과 MS는 클라우드 인프라를 강하게 키우고 있으며, MS는 이 대목에서 한 방을 보여준 셈이다.

모바일 시대의 패권은 애플이, 그러나 클라우드로 대표되는 초연결 인공지능 시대의 패권 주인공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MS는 일찌감치 준비한 클라우드 인프라로 기존 강력한 하드웨어 기술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모바일의 끝이 보이는 시대 애플이 시총 1조달러를 찍고, 불과 몇 달만에 클라우드로 무장한 MS가 애플의 덜미를 잡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제 변화의 속도는 번개같으며, 우리가 현재 모바일에서 초연결 시대의 중간으로 진입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글_ 최진홍 기자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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